사람들은 왜 좋은 퇴직연금도 가입하지 않을까?
퇴직연금은 노후 준비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상품이다. 세금 혜택도 크고 장기적으로 자산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퇴직연금 가입을 미루거나 최소한의 금액만 납입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전통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실제로는 심리적 편향과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퇴직연금 제도는 이러한 두 경제학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1. 전통경제학과 행동경제학 이론 비교
| 전통경제학 | 행동경제학 |
| 인간은 합리적 | 인간은 편향존재 |
| 세제혜택 제공 | 선택환경 설계 |
| 정보 제공 중시 | 디폴트옵션 중시 |
| 개인 책임 | 제도 설계 |
전통경제학의 대표적 관점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퇴직연금에 세액공제나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세금을 절약할 수 있고 노후 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이러한 혜택을 계산하여 스스로 가입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사람들은 계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심리적 편향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한다. 행동경제학은 퇴직연금 가입 여부가 단순한 경제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관성, 손실회피, 현재편향과 같은 심리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즉, 전통경제학은 "좋은 상품을 만들면 사람들이 가입한다"라고 생각하지만,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선택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2. 전통경제학 비판: 사람들은 생각보다 비합리적이다
전통경제학의 예측과 달리 많은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가입을 미루거나 충분히 저축하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관성(Inertia)이다. 사람들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퇴직연금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은 몇 분이면 가능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귀찮다는 이유로 가입을 미룬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가입자들이 원리금보장상품에만 자산을 맡기고 있다.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투자지식 부족뿐 아니라 기존 상태를 유지하려는 현상유지 편향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나 역시 처음 퇴직연금 계좌를 만들었을 때 상품 선택이 귀찮아 기본 상품으로 몇 년 동안 방치한 적이 있다. 행동경제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것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관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손실회피(Loss Aversion)다. 사람들은 같은 금액이라도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월급에서 일정 금액이 퇴직연금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현재의 손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이유는 현재편향(Present Bias)이다. 사람들은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만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퇴직연금은 수십 년 후의 혜택을 제공하지만, 납입금은 당장 월급에서 차감된다. 따라서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손실에 집중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합리적인 계산보다 심리적 편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순한 세제 혜택만으로는 충분한 가입률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3. 행동경제학의 대응방식: 디폴트 옵션과 점진적 저축증대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약점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이다.
기존 방식은 가입을 원하는 사람이 직접 신청해야 했다.
- 신청하면 가입
- 신청하지 않으면 미가입
반면 디폴트 옵션은 구조를 반대로 설계한다.
- 아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동 가입
- 원하지 않는 경우에만 탈퇴
이러한 작은 변화만으로도 퇴직연금 가입률은 크게 증가했다. 사람들의 관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관성을 활용한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점진적 저축증대(Save More Tomorrow)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은 현재 월급이 줄어드는 것을 싫어하지만 미래의 급여 인상분을 활용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다. 따라서 지금 당장 저축액을 늘리는 대신, 다음 연봉 인상 시점부터 저축률이 자동으로 높아지도록 미리 선택하게 한다.
이 방식은 두 가지 심리적 편향을 동시에 해결한다.
첫째, 현재 월급이 줄어드는 느낌을 줄여 손실회피를 완화한다.
둘째, 미래의 자신은 더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활용해 현재편향을 극복한다.
결국 행동경제학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을 하도록 선택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마무리
퇴직연금은 행동경제학이 현실 정책에 성공적으로 적용된 대표 사례다. 전통경제학은 세금 혜택만 제공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저축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관성, 손실회피, 현재편향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인정하고 디폴트 옵션과 점진적 저축증대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연금 가입률과 저축액 증대의 목표를 달성했다. 특히 디폴트 옵션은 인간의 자기통제력 부족을 보완하는 강력한 장치로 평가받는다.
퇴직연금의 성공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좋은 선택을 하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